회사 경영의 법칙과 운영 방법

우리는 여러 가지 연구에서 다수의 가정과 상대성을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성 중에서 특히 경제적 연구의 방법과 목적에 연관된 네 가지가 있는 바 그것은 유사성과 상이성, 집단행동의 실행규칙, 부분 전체 관계에서 파악해야 할 목적 그리고 현재의 여건을 조성한 역사적 전개 등이다. 개인은 이들 가성과 상대성 중에서 특히 유사성과 상이성을 비교하면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만 있으면 어떤 것이 타인 의존적인 전략적 거래이고 또 어떤 것이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상규적 거래인가 찾아내야 할 것이다.

기업과 노동조합, 정당 그리고 특히 대안을 선택해야 하는 모든 개인의 경영관리 전략은 힘의 동태적 배분, 거래 빈도 그리고 상황 변화에 대한 현명한 대처에 의존하게 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경제학의 가치이론을 시제 요소에 따라 세 가지 분파로 나누어 놓았다. 즉 농업의 과거 ‘생산 비용’은 현재의 사용가치의 근거가 되고, 소비자의 현재 심리상태는 현재의 심리적 가치를 결정하고, 은행의 계약 이행 담보는 현재의 협상가치에 대한 미래 유인이 된다.

과거 비용을 가치로 간주하는 이론은 18세기와 19세기 전반의 영국 고전 경제학자와 독일 공산주의자에 의해 확립되었다. 한편, 현재의 쾌락을 가치로 간주하는 이론은 19세기 마지막 사반세기에 오스트리아 경제학지들에 의해 확립되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계약이행을 가치로 보는 이론은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 은행가와 법률가의 실무관행에 뿌리를 두고 발전하였다.
우리는 전문적인 경제학자와 단순 경제활동 참가자를 구분하고 있다. 경제활동 참가자는 농민, 노동자, 소비자, 은행가, 법률가, 사업가 등이다.

경제학자는 여러 학파의 공적 이론가들이다. 단순 참가자들의 이론은 이들의 거래와 가치평가에서 이들이 (경제)활동의 원인, 목적, 환경, 계획 등에 대해 암묵적으로 수용하는 근거이며, ‘가치’란 이들이 여러 가지 관련 요소에 대해 부여하는 상대적 중요성이다. 경제학자들의 공적 이론은 참가자들의 특정 기간의 암묵적 이론을 정치화한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은 18세기에 농업 생산성을 가치의 원천으로 간주한 프랑스의 중농주의자에 의해 태동했다. 그러나 1776년에 애덤 스미스는 노동생산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의 원천으로 바꿔 놓았다. 리카도와 맬서스는 19세기에 애덤 스미스가 이중적으로 사용한 노동의 의미를 두 가지로 분명하게 분리해서 인식했다.

리카도는 가치를 과거 노동이 현재 생산품에 ‘사용가치’로 ‘체화된’ 결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그 노동이 기술로 대체되어 있다. 맬서스 역시 가치를 ‘체화된 노동’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그 노동은 화폐라는 매개 수단을 통해 현재의 재산 소유자가 교환가치를 지배할 힘을 갖게 해 주는 것이어야 했다. 50년 후, 그러니까 1848년 이후, 사회주의자와 노동조합이 재산과 기술에 대해 반란을 시작했을 때 이 정통 인과이론들은 노동자의 것이지만 자본가들이 지배하게 된 노동에 대한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착취’이론의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마르크스와 동시대인 1848년의 유럽 혁명기를 경험한 미국의 낙관주의자 커레이는 비관주의적 착취이론을 던져버리고 과거 생산 비용 대신에 기계에 의해 더 낮아진 현재의 재생산 비용을 결정변수로 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분석에서 시간 요소를 미래로 전환시키고, 영국의 자유무역 제조업자와 그들이 착취한 노동에 대항해서 미국의 후발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관세를 주장하려고 자기 이론에 기계 변수를 도입했다. 남북전쟁 후 노예제도 하에서라면 40억 여 달러에 상당할 노예 자산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미국 대법원은 당시를 풍미하던 낙관적 민주주의 이론을 수용했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들은 오스트리아학파의 소비자 효용 체감에 바탕을 둔 심리이론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들은 가치 측정의 실용적 목적을 위해서는 고전파의 노동가치설에 입각한 금 단본위제를 지지했으며 ‘그린백’(달러) 지폐 본위나 저순도 은본위제이론을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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