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학파의 경영자와 통제개념

여러 분리된 과학의 각각에 대해 분리된 ‘원인’을 예컨대 물리학과 천문학에 대한 중력, 화학에 대한 인력, 전자기학의 극성 등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하나의 조화된 시스템으로 통합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 첫 번째로 ‘신의 목적’ 대신에 ‘다중 인과작용’을 인정하는 이론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다중 인과작용은 최근에 소로킨이 주장하였듯이 ‘무한회귀’를 초래하여 결국 ‘주동자’로 유도되거나 “전체 세계가 만사의 원인이 된다.”는 의미 없는 명제로 귀결되고 만다. 연구방법론 차원에서도 그가 주장하듯이 ‘무수한 선행 원인’을 모두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부가 제외된 원인 목록’으로는 구명되지 않은 원인이 문제가 되고, 소수의 원인만 선택하면 ‘아주 자의적인’ 것이 된다.

원인은 ‘이질적이고 척도가 다르고 수 없는’ 것이라서 ‘의미있는 통합’이 불가하고 상대적 인과력을 측정할 척도도 없다. 연구자의 이러한 곤혹스러움은 여러 원인에 “수리적 값이 부여될 때 더욱 가중된다.” 그래서 소로킨은 이전의 지적 사유나 숫자화된 가치 개념을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에 기초한 사회적인 새로운 의미의 ‘가치’로 대체시켜 가치란 개인이나 집단의 행동을 유발하는 열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주요 가치로 판명될 ‘주된 원인’과 여타의 부수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멀리 내다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말 장난에 불과할 뿐 의미상의 변화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남북 전쟁과 관련된 논쟁에서 노예제도에 대한 북부의 반대가 전쟁 ‘원인’이 된 것인지, 또는 노예제도의 시행을 주장하는 남부가 북부를 침공한 것이 전쟁 ‘원인’이 된 것인지에 대해 소로킨 식의 사회학적 해명은 ‘그들의 가치 체계가 서로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로 바뀌게 될 것이다. 다중 인과분석의 이러한 실제적 어려움은 바로 자연과학자들이 과거나 현재에서 이전 원인들의 물리적 유사성을 탐구하면 되는데 반해 인간 의지란 오늘을 살지만 미래의 기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임에 기인한다.

의학과 정신분석학을 포함해서 자연과학의 연구 대상인 물질과 힘은 자기주도적인 이행, 유보, 회피 혹은 어느 시간이 다른 시간보다 적의하다는 등의 개념이 없으며, 이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나 다른 힘에 의한 통제개념이 없다. 그 미래는 과학적 탐구자 자신의 계획 안에 있다. 경제학자들이 자연과학을 모방하고 있던 경제과학의 발전 단계에서는 경제이론상의 개인은 자기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자, 분자. 증기기관, 마력 등과 마찬가지로 외력에 의해 통제 당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정말로 이것이 당시의 경영자들의 태도였으며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고전학파와 효용학파의 경제학자도 이로부터 이론 수립의 단초를 확보하였다.

이들의 과학은 물질주의에 기초해 있었으며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경영자도 노동자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전직이나, 노동조합 결성, 비밀 투표 시행, 노예 해방 주장 등의 사실을 목도하면 노동자들을 불성실한 것으로 간주하여 군대를 불러들였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자연력에 바탕을 둔 경제적 인과이론 대신에 인간 의지의 목표에 기초한 연구·조사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세기에 걸친 경제과학의 역사는 영미계통의 법원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여기서는 역사발전의 주체인 건전한 성인을 ‘원인’에 따라 과거로부터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온 것으로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따라 미래를 내다보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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